[안문혁목사] 목회자재교육 194 - 여호와 소망하는 자는 땅을 차지 하리로다
안문혁 목사(마천세계로교회 창립목사, 영평교회 원로목사)
여호와를 의뢰하라 하는 말씀은 어떤 때를 말하느냐 하면, 위기 때나 좋은 기회라 하는 때에 인간 방법대로 행동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야 함에도 제멋대로 결단하고 단행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것이 정직하게 삶의 본이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위기도 옵니다. 혹은 악인이 더 잘되어도 이상하게 여깁니다. 주일 성수를 기본으로 삼고 어찌 행위하느냐를 봅니다. 예레미야도 예레미야 20장을 보면 유혹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하박국도, 다윗도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요동되었습니다.
시편 73편 12절에 “악인이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불어난다” 하여 고로 내가 심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가서] 알았습니다. 악인들의 종말이 파멸임을 보고 깨달았다고 합니다(14, 35). 세상의 형편이 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㊀ 악을 행하는 자가 잘될 때 흔들림을 받지 말라고 합니다(14, 35).
1]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자들인데, 이들이 잘되어 불평거리가 되어 성도가 여기서 요동을 받습니다. 그러나 “풀과 같다”고 합니다. 풀과 곡식을 비교하면 풀은 잠시 생기고 곡식보다 크게 자라지만, 풀은 하루살이같이 하루로 끝이 납니다. 곡식은 자라 곡간에 들어갑니다. 긴 시점에서 보면 풀은 무가치합니다. 임시 세상에서는 더 잘되는 것 같으나 멸망하는 것입니다.
2]세상 사람들이 날뛰는 것을 보고 낙심하지 말라고 합니다. “권세는 10년을 못 간다”는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 하였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권세라도 영원하지 않으며,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꽃은 열흘 붉지 않다는 말로 씁니다. 좁게 보면 젊음의 아름다움은 찰나라는 뜻입니다. 고로 한결같이 성실을 음식으로 삼으라고 합니다. 역사의 산물을 보십시오. 고대 문명국들도, 바벨론도 망하여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만을 영원한 나라의 왕이 되게 하십니다.
3]폭력자가 난무하지만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합니다. 나폴레옹은 센트헬레나 섬에서 “예수는 이겼고 나는 패자다”라고 하였습니다. 약해서 저주는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성전 정결 때에 다 내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사 12영도 동원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져 주는 것이 승리가 되기에 그러하신 것입니다. 혀와 이빨을 대조하면 어느 쪽이 이깁니까? 최후에는 혀가 이깁니다.
㊁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십시오.
우리는 영원한 목적 존재입니다. 믿음대로 살고 성실을 식물로 삼아 순종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시편 37편 3절에서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으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는 성실함을 삶의 양식처럼 여기며 살아가라는 권면으로, 성실함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을 바라고 의뢰하며 순종으로 살라는 뜻입니다.
1]믿음은 히브리어로 에무나입니다. 에무나(אמונה)는 ‘믿음’, ‘신실함’, ‘충성’, ‘확고함’을 의미하며, 변함없는 신뢰를 뜻합니다. “합 2:4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였습니다. 에무나는 구약성경에 49회 나타납니다. 믿음의 성실은 공동체가 다 받들어 주어서 감당하게 합니다.
출애굽기 17장 12절에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 아래에 놓고 그 위에 앉게 하며, 아론과 훌이 하나는 이편에서 하나는 저편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하였다고 합니다. 모세의 팔이 내려오지 않은 것이 곧 스테디, 에무나입니다.
역대하 19장 9절에 “여호와를 경외하고 충의와 성심으로 이 일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2]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바른 길이라 하시니, 임시로 잘되는 것을 보고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길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대중이 가는 길은 세상 사람들이 가는 길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동역하십시오. 좋든 싫든 꾸준히 사십시오. 성경은 믿음으로 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먼 곳을 바라보았습니다(히 11:8). 믿음으로 살라고 합니다. 바울은 삼층천을 보고 온 사람으로서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매를 맞고 강과 바다와 육지의 위험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육으로 출세의 길을 배설물로 여기고 날마다 죽으면서 살았습니다. 믿음과 진리의 길을 선한 싸움으로 살라고 권면합니다. 영원한 나라를 위해 살라고 합니다.
*윤 대통령이 생각납니다. 어릴 때 목사가 되려 했다고 합니다. 계엄령을 내린 것은 조금 성급하였고, 감옥 생활을 하면서 이 점이 부족했다고 말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큰 복은 성경을 읽어 영이 잘되어서 미래는 신앙으로 살 것처럼 보입니다.
3]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길만 가십시오. 예배 신앙은 바로 이 줄을 잡아야 합니다. 그가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내 마음의 소원을 현실에 두지 마십시오. 이스라엘에게 광야 길에서 운행주만 따르라고 하셨는데도 광야의 산물을 탐하였습니다. 독수리의 눈으로 역사를 길게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길게 참아 왔습니다.
4]길을 여호와께 맡기십시오. 그를 의지하고 맡길 수 없을 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주께로 갑니다”라고 고백하십시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의 길이 내 길이 되어야 합니다.
궁극적 승리는 여호와께 피함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는 의로운 정오의 빛과 같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궁극적 피난처가 되십니다. 잠깐의 반짝임을 목표로 삼지 마십시오. 성실로 살고 믿음으로 사십시오. 인생은 장거리 경기입니다. 당장의 임시 목적은 내 목적이 아닙니다. 마침내 승리는 세상에서는 훈련 기간이며, 천국 교회가 목적입니다.
㊂ 결과는 땅을 차지합니다[본장에서 다섯 번 나옵니다]
1]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9장 27절에서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의 내용은 주인이 된다는 말로, 어려움을 통과한 이들이 주권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의인의 자식은 결식하지 않습니다. 남은 자의 손들은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셔서 먹여 살리십니다. 엘리야는 수넴 여인이 흉년 때에 쌀과 기름이 떨어지지 않게 하였고, 엘리야에게는 까마귀가 물어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5,000명도 4,000명도 축복하여 먹이신 후 집으로 보내셨습니다.
2]“결과는 땅을 차지한다”는 말은 시편 37편과 마태복음 5장 5절에서 유래한 말로, 온유하고 의로운 자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천국은 물론 땅을 유산으로 얻고 세상에서도 번영을 누린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땅’은 물리적인 토지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평안,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포함하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1]물리적 토지를 얻는 것뿐만 아니라 특정 영역을 점유하거나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을 의미하며, 성경적 맥락에서는 복음을 전파하여 신앙의 영향력을 넓히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을 전파하며 나아갈 때 가는 곳곳마다 예비된 물질과 인물도 늘 준비해 두셨습니다. 여호수아 때의 가나안 점령기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2]하나님께서 다스리는 영역으로 만드는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상속하다’, ‘점유하다’의 의미로, 상황에 따라 주어지는 몫이나 영역을 획득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즉 악인이 득세해도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시고 최종적으로 다윗을 세워 40년간 치리하게 하셨으며, 메시아로 오신 분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차지하고 왕이 되실 것입니다.
[3]천국의 주인으로서 실력자가 됩니다. 로또처럼 짧게가 아니라 길게 내다볼 수 있습니다. 하늘의 모든 마을도 믿음의 승리자들에게 몇 마을씩 분배하여 활동 무대를 넓게 삼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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