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종열 목사] 그리스도를 본 받음
고린도전서 10장 31절-11장 1절
본문에 나오는 고린도 교회는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우상의 제물이었습니다.(고전 8:1) 우상의 제물은 이방 신에게 제사하는 제단에 놓인 제물 자체가 아닙니다. 이런 제사에 참여하여 제물을 먹는 것은 귀신의 식탁에 참여하는 것이요,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니 우상숭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우상의 제물은 시장이나 불신자의 집 등 일상에서 언제든지 접할 수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음행은 피하라고 하지만 고린도에서 우상의 제물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우상의 제물은 교회 안에서 갈등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는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도 하나님이 주신 식물로 여겨 먹을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어떤 이들은 그 음식을 우상의 제물로 받아들였습니다. 바울은 지식 있는 자가 우상의 집에서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고 약한 자가 담력을 얻어 같이 먹게 된다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한다”고 엄중히 경고합니다.
바울은 어떤 권리나 자유가 생기더라도 필요하면 기꺼이 절제했습니다.(고전 8:13) 또한 사도로서 사례비를 받을 정당한 권리가 있었지만 고린도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그 권리를 스스로 내려놓았습니다.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것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삶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 이처럼 자신의 권리를 내려놓는 것이라면 손해이며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놀랍습니다.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는 일이 됩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경건하고 능력 있는 소수만이 감당하는 특별한 사명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일상의 모든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방식입니다.
오래전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처음부터 장의자가 없던 그 교회가 새 예배당 입당을 앞두고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바닥에 방석을 놓자는 쪽과 놓아서는 안 된다는 쪽이 맞섰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데 방석에 앉을 수 없다는 주장과 예배에 집중하려면 편안한 방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팽팽했습니다. 양측 모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로를 배려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어느 한쪽이 자기 권리를 절제하고 양보했더라면 얼마나 아름다운 결말이 되었을까요.
가진 것이 적을 때는 권리와 자유를 절제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누리는 것이 많아질수록 그것을 내려놓기는 더 어려워집니다. 우리나라는 19세기 말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 20세기 초 대부흥의 물결 속에서 큰 혜택을 누렸습니다. 6·25전쟁 직후 세계 최빈국이었으나 개발도상국을 거쳐 2021년에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만장일치로 선진국 지위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더 많이 내려놓아야 할 우리에게 사도 바울의 말씀은 울림을 줍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배종열 목사(해길사역연구원장)
◇웨이크신학원 교수 배종열 목사가 원장으로 섬기는 해길사역연구원은 교회를 세우는 세움 사역, 사회와 연결하는 이음 사역, 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는 나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회 개척을 준비하거나 개척 교회 사역자들에게 교회 개척·목회 사역의 원리와 전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