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조준목사 칼럼 (국제교회논평회·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설립자) “빈방이 없습니다.”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날 영국 런던 교외 어느 농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비를 피하느라 당황해하는 어느 부인을 본 농부는 집에 있던 우산 하나를 집어들고 전해주며 이 우산을 쓰시라고 했습니다. 이튿날, 예쁘게 포장된 우산과 편지가 농부네 집에 전달되었습니다. 그 편지에는 “정말 감사했다.”는 정중한 인사와 우산을 빌렸던 사람의 이름과 싸인이 있었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
여왕을 알아보지 못했던 이 시골농부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그분인 줄 알았으면 내가 정성을 다해서 그분을 영접하고 우산도 내게 있는 것중에 제일 좋은 것으로 드렸을텐데...”
이런 일이 2000여년전 첫 번째 성탄을 맞은 유대 땅에 일어났습니다. 인류는 죄에서 구속하시기 위해 하는 보좌를 내놓으시고 말씀이 육신을 입으시고 만왕의 왕이 이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한 것은 많은 사람이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알 수 있는 사람도 이를 무시했습니다.
헤롯왕은 구약에 약속한 메시야 그에게 경배해야할 분임을 알면서도 살육의 칼을 휘둘렀습니다. 자기의 왕권에 대한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서기관들은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로 성경을 통달했었습니다. 그러나 나신 예수님께 경배하러 가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는 것으로 그친 사람들입니다. 실제적 무신론자들입니다.
베들레헴 여관주인들은 어땠습니까?
누가복음 2장 7절에 “첫 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했습니다. 그 당시 베들레헴에는 호적을 하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방마다 손님들로 가득차서 만실을 이루어 여관 주인들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여관 저 여관을 찾아 헤매었지만 여관마다 “빈방이 없습니다”라는 팻말을 내 걸었었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는 수 없이 마구간 구유위에 나셨습니다. 왜 여관 주인이 예수님을 맞이하지 못했습니까? 작은 도시 베들레헴에 갑자기 손님들이 몰려드니 여관 주인은 대목을 만났습니다. 방은 한정되어 있는데 손님이 몰리니 아마 웃돈 거래로 방을 얻는 경우도 있었을 것입니다.
먹고 사는 것이 잘못이 아닙니다. 그러나 무엇이 더 중요한 가를 잊어버리면 이것은 비극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모실 방이었습니까? 자본주의 경제체제 속에 돈이 우선인 세상에서 교회마저도 돈의 세력에 예수님이 밀려나 말구유에 계시지 않습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하면서 국민이 주인이란 말을 하면서도 일부 권력자들의 횡포에 교회가 눈치나 보면서 마땅히 해야할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교회에서 예수님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교회가 이기심과 욕심으로 가득차서 예수님 계실 곳이 없지 않습니까?
말씀 복음에 든든히 서 있어야 할 교회 성도들이 무속신앙에 매어있어 예수님을 뵈올 수가 없지 않습니까? 거리에 나가면 성탄 계절을 맞아 교회가 연합해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 밤이면 찬란한 빛을 발합니다. 백화점이나 빌딩에 들어가도 휘황찬란한 성탄목이 서 있습니다. 교회마다 장식해놓은 성탄목은 우리의 시선을 이끌어 예수님을 찾아뵙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서도 예수님을 모실만한 빈방이 없습니다.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그가 자기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다(요한복음 1장 10-11절)고 했습니다. 이것은 비극입니다. 여러분 마음에는 빈방이 있습니까?
국제독립교회연합회 국제논평회 설립자 웨이크신학원 명예총장 영락교회 담임역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