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총장과 신학회 회장, 그리고 신진 학자들 망라
11. 최덕성 박사
브니엘신학교 총장, 기독교사상연구원 원장
사도행전 4장 18-20절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하나님의 법(신앙의 법)과 실정법이 상충하면 하나님의 법을 따름이 마땅하다. 하나님은 실정법을 어긴 자들을 존귀케 했다. 히브리 산파들, 모세의 어머니와 누이, 에스더, 다니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실정법 위반자다. 실정법 위반자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설교자를 세워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 설교자에게 성경이 담고 있는 모든 진리를 남김 없어 설교할 의무를 부여했다(the whole council of God)가 있다(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159문답, 딤후 4:2).
대한민국에는 하루하루 시커먼 쓰나미 같은 멸망의 먹구름이 다가오고 있다. 법치주의가 무너졌고, 간첩이 설치고 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국가가 제한하고 있다. 정교분리 원칙이 오독되고 있다.
정치 권력자와 입법부와 사법부를 향해 견제와 비판의 설교를 하지 않는 설교자는 하나님의 충직한 일꾼이 아니다. 하나님은 정교분리 원칙이라는 커튼 뒤에 숨어 입을 닫고 있는 설교자를 심판하실 것이다.
12. 황덕형 박사
서울신학대학교 총장, 한국기독교학회 직전 회장
전도서 10장 7절
“또 내가 보았노니 종들은 말을 타고 고관들은 종들처럼 땅에 걸어 다니는도다”.
2025년은 격변과 역전의 해입니다. 이토록 심한 격변기에 주의 은혜가 우리 민족 모두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13. 노영상 박사
한국기독교학회 전 회장, 장로회신학대학교 전 교수, 호남신학대학교 전 총장,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전 총장
신명기 4장 40절
“오늘 내가 네게 명령하는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라 너와 네 후손이 복을 받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한 없이 오래 살리라”.
모세는 죽기 전 가나안 땅 진입을 바로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세울 새로운 나라의 건국이념을 비스가산에서 공표했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과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신명기는 반석 위의 나라를 세우는 건국 원칙이 다른 것에 있지 않은 바, 재판을 공정히 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움을 보살피는 것임을 강조했다.
첫째로 모세는 뇌물을 받고 백성을 재판해서는 안 되고, 공의로 재판하는 국가가 돼야 기강이 서고 백성들도 나라를 위해 살려고 할 것임을 강조한다(신 16:18-19).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이 칭찬을 받으며 해악을 미친 사람들이 제재되는 국가가 되지 않는다면, 그런 나라는 존립이 위태로워지게 된다(신 25:1-3). 이에 우리는 사법부와 국가보훈처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토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신명기가 둘째로 강조한 것은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약자라 함은 가난한 사람, 고아, 과부, 나그네, 노예, 여성, 범죄자 등을 일컫는다. 신명기는 약자를 보호하는 사회가 될 때 가나안 땅에서 오래도록 평안히 살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신 24:19-21, 25:25-28).
2026년을 맞는 우리나라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작금의 상황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국가 건립이념을 세우는 당시와 비슷하다. 신명기 말씀과 같이 올바른 사법적 판단 위에 굳건히 서는 법치국가, 약자의 손을 붙잡아주는 복지국가가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에 무궁한 축복을 해주실 것이라 믿는다.
14. 최대해 박사
대신대 총장, 한국신학대학총장협의회 회장, 대교협 이사
히브리서 12장 2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만 바라보자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머무르다 가는 존재입니다. 언제든 예수님이 부르시면 떠나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만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가는 길도 다르고 방향도 다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땅이 끝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우리는 마지막 종착지가 다름을 알고 살아갑니다. 우리는 언제나 세상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주님이 주시는 신앙 인격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새해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꿈과 비전을 지니고 살아가기에, 부조리한 것처럼 보이는 일에도 언제나 섭리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그것 때문에 기가 꺾이지 않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복된 시간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15. 서문강 박사
중심교회 원로, 청교도 연구자
사사기 7장 7절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한국교회는 이제까지 하나님 은혜로 크게 성장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그것을 자랑해 왔다. 그러나 이제 한국교회는 그 ‘다수 세력’의 고지에서 ‘소수의 약함’이라는 저지대로 추락할 형세의 조짐을 대면하고 있다.
한국교회에 젊은이들이 ‘소수’요, 신학교 입학생도 ‘소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수도권을 벗어나 지역의 교회들이 부교역자를 구할 수 없다. 아니 심지어 서울 중대형 교회가 아니면 젊은 부교역자를 구하는 것이 정말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판국이 앞으로 급하게 점증돼 한국교회의 세력이 급격하게 약화되는 지경을 맞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취할 방도는 무엇인가? ‘기드온 300명의 용사와 같은 영적 군사’를 길러내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동안 ‘교회성장주의’ 신학의 지원을 받아, 한국교회는 ‘급격하게 성장한 다수 세력’을 뽐냈다.
그러나 그것이 안고 있는 ‘거품의 현실’을 걷어내고 ‘경건한 정예로 구성된 세상을 이기는 교회’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본심을 기드온에게 주셨던 메시지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수의 많음이 아니라 그 ‘겨자씨 믿음’을 가진 ‘소수정예’로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그것으로 ‘진정한 부흥’을 일으키려 하신다. 이것이 교회사를 통해 주신 성령의 교훈이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 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삿 7:2, 6-7)”.
16. 최더함 박사
마스터스세미너리 책임교수, 마스터스개혁파총회 의장, 바로선개혁교회
고린도전서 4장 3-4절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인문학을 하나님께』 저자 한재욱은 인간의 삶을 평가하는 세 가지 눈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나 스스로가 나를 평가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웃이 나를 평가하며, 셋째는 하나님이 평가하신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요약하자면 첫째는 자체평가이고 둘째는 사회적 평가이며 셋째는 신적 평가라 할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이 세 가지 기준에 의해 자기 인생에 대한 평가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한 존재이므로, 본성상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다.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 영광을 구한다. 자기 영광은 자기 자랑으로 똘똘 뭉쳐 자만심의 기초가 된다.
요한계시록 라오디게아 성도들은 자신들의 부요함에 대해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 대해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었고 벌거벗었다(계 3;17)”고 호되게 비판하셨다. 자기 평가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달아야 한다.
나에 대한 다른 사람들과 세상의 평가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평가 또한 올바른 평가라고 하기엔 너무나 허점과 모순이 많다. 나의 이웃은 나의 외적 성취를 기준으로 나를 평가한다.
사람들은 진실보다 드러난 사실에 집중한다. 현대인들의 불행은 그런 평가 기준과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살아야 한다는 점이다. 사도 바울은 이웃의 평가를 무시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결정적인 일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바울이 가장 비중을 둔 평가는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었다. 우리 인생을 정확 무오하게 평가하시고 결산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만이 완전하시고 거룩하시고 정의롭고 공평하신 심판주이시기 때문이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고 운행하시는 유일한 분이 하나님이시다.
2025년 한 해는 나라 곳곳에서 하나님을 의식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마치 광야의 들소들처럼 마구 날뛰는 한 해였던 것 같다. 정치적으로 완전히 상대를 짓밟아 도말하고자 하는 두 세력의 비통하고 몰상식한 대립이 온 나라를 휘청거리게 한다. 옳고 그름은 사라지고 니편 내편의 목소리만 가득하다.
이런 시국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한국교회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드높다. 정교분리 원칙을 지켜 교회가 세속의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교회의 본질상 나라의 정치가 잘못된 길을 갈 때 이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그러나 싸움은 끝날 것이다. 과연 누가 승리할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잠언 기자는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잠 21:2)”고 했다.
하나님은 정직한 자의 손을 들어주실 것이다. 모든 악한 의도로 만든 결과물이 당장은 쓰임새가 있을지라도, 결국 불량한 목적이 도달하는 곳에서 패망할 것이다. 믿는 자들이 기댈 것은 오직 이것이다. 제발 함부로 고함치고 주먹을 휘두르지 말라.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아멘.
17. 서창원 박사
한국개혁주의설교연구원 이사장, 전 총신대 교수
데살로니가전서 2장 3-4절
“우리의 권면은 간사함이나 부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속임수로 하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을 위탁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목사요 은퇴한 교수로서 올 한 해를 생각하며 위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여러 교회에서, 그리고 여러 선교지에서 증거한 하나님 말씀이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이었는지 아니면 사람에게 호의를 얻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 깊이 성찰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이 하수선한 시점에서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옮게 여기심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정치인들이나 사회 지도층인사들만이 아니라 특별히 주의 일꾼으로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과연 나는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하나님께 옳다 인정을 받은 길을 걸어왔는지 자성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말씀을 옳게 분별할 능력도 바르게 이해하고 올바르게 전달할 자질도 없는 자들이 한국의 현실이나 선교지 곳곳에 많다고 한탄하면서도, 치유할 능력도 지혜도 없는 내 자신의 무기력함과 자신과의 싸움에 지친 한 해였습니다.
그런데도 다시 소망을 가지고 일어섬은 우리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에게 기쁨의 단을 거두게 하신다는 약속을 주신 하나님을 믿기에 허물 투성이요 넘어짐의 상처들이 곳곳에 있어도 우리의 사역이 간사함에서나 부정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메시지는 청중을 속이거나 부정한 이익을 추구하거나 음흉한 의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거룩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수많은 종교들이 산재해 있었고, 많은 종교 지도자가 탐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사람들을 기만한 일들이 많았기에, 바울은 적어도 그들과 다른 사도적 메시지의 정결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에 대한 입증으로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천명한 것입니다.
목사가 된 동기가 윤리도덕적인 부정함이 아니라 영적인 더러운 탐욕과 이익의 수단이었다면,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의 엄중한 판결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 남은 시간이 있을 때 우리가 회개하고, 사람들에게서 뭔가를 얻고자 함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옳다 인정함을 받는 착하고 충성된 일꾼으로 매진하는 남은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8. 정성욱 박사
미국 덴버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 국제 커피선교회 C-Connection 이사장
요한계시록 21장 5-7절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을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지난 한 해 동안 대한민국은 옛 질서의 극단적 심화를 경험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정치 영역에서의 극단적 갈등과 부패였다. 한국교회는 이러한 옛질서의 심화 속에서 길을 잃고 전전긍긍하거나 방황했다.
2026년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는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꿈꿔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 나라가 강력하게 임하게 되길 기도해야 한다. 그러할 때 대한민국은 치유와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 역시 새로운 회복과 부흥을 누리게 될 것이다.
2026년 대한민국과 한국교회 공히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케 되길 간절히 기도한다.
19. 김구원 박사
전주대학교 신학과 교수, 한국고대근동학회 이사, 전 단국대 사학과 고대문명연구소 연구원
레위기 19장 17절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이 구절은 이어지는 18절인 “네 이웃을 네 몸(자신)과 같이 사랑하라”와 같은 문단에 속합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의 참 의미를 설명하는 구절입니다. 즉 이웃 사랑 명령은 무너진 형제 관계를 전제한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7절은 형제 관계가 무너졌을 때 하지 말아야 할 것과 반드시 해야 할 것을 차례로 가르치면서, 이웃 사랑의 의미를 설명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입니다. 즉 형제를 죽이도록 미워하면서도 겉은 그렇지 않은 척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성경 저자는 형제와 관계가 틀어졌을 때, 증오를 마음 속에 숨기지 말고, 그 대신 그를 “반드시 견책하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원문적 의미는 치열하게 토론하고 대화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을 이웃 사랑 계명에 대한 해설로 이해하면, 이웃 사랑은 무너진 관계에 있는 이웃과 소통과 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것입니다.
2025년의 한국은 무너진 형제 관계로 신음한 한 해였습니다. 2026년 새해는 형제를 속으로 미워하는 대신, 치열하게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는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 박욱주 박사
연세대 기독교문화연구소 연구교수, 좁은문은혜교회
에베소서 4장 31-32절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근자에 우리 사회를 보면 진정으로 화가 많은 시대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사회 모든 영역에서 분쟁과 악의가 가득해, 서로에게 돌을 던지는 데 주저함이 없는 세태를 누구도 부정할 길이 없다. 화, 분노, 그리고 냉소가 문화의 골수에 맺힌 시대라 단언할 수 있다.
성경은 노함과 분냄을 무조건적으로 금하지 않는다. 분노의 이유가 죄악을 물리치고 영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일 때는 언제든 분노의 감정이 정당화된다. 하나님께서 죄악과 불의에 분을 발하시고, 선지자와 성도들 역시 공동체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주 분노하곤 한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분노, 그리고 교회까지 침투한 분노는 그 성경적 정당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참으로 세속적인 분노다. 진영, 세대, 성별, 빈부 차이가 분노의 근거지라면 신앙과 무관한 경우가 태반이다.
세속의 이익과 권리에 결부된 분노와 저항 정신, 이는 성경적 심정이 아니라 현대 정치와 문화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포스트구조주의의 정서다. 타자를 환대한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사상 체계가 타인에 대한 무자비함을 부추기는 작금의 아이러니는 인간이 고안한 사고의 명백한 한계를 드러낸다.
모쪼록 새해에는 우리 한국교회가 신앙과 무관한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영혼을 돌아보며 사랑하는 성결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