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의 질적 차이 계속 벌어져
플랫폼 기업들, 블랙박스 구축
등급 매겨지는 사회 도래 우려
정보 독점, 더 이상 방치 안 돼
데이터 이동·소멸권 보장돼야
공공 인프라 디지털 광장 필요

▲최신 프롬프트를 잘 알고 유료 최고 버전을 사용하는 젊은 남성과 키오스크도 제대로 못 쓰는 노인을 대조한 이미지. ⓒ챗GPT
▲최신 프롬프트를 잘 알고 유료 최고 버전을 사용하는 젊은 남성과 키오스크도 제대로 못 쓰는 노인을 대조한 이미지. ⓒ챗GPT

우리는 한때 검색창 앞에 모두가 평등하며 정보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열려 있다고 믿었으나, 그 장밋빛 믿음은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종말을 고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마주한 격차는 단순히 인터넷 접속 여부나 기기 소유의 문제를 넘어, 정보의 ‘질’ 자체가 계층을 가르는 결정적 요인이 되는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같은 질문을 던지더라도 누군가는 최신 모델을 통해 더 정확하고 맥락에 맞는 정보를 신속하게 검증하며 적용하는 반면, 다른 누군가는 낡은 도구와 빈약한 정보에 갇혀 제한된 답변만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러한 질적 차이는 교육과 취업, 의료와 투자는 물론 정치적 영향력에까지 즉각적인 균열을 일으키며, 우리 사회를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정보계급 사회’로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개개인의 기술 활용 능력이 아니라, 누가 AI라는 생산 수단을 통제하느냐로 수렴됩니다.

거대 자본과 기술을 선점한 플랫폼 기업들은 양질의 데이터를 독점하며 지식의 프로세스를 철저히 은폐하는 ‘지식의 블랙박스’를 구축했습니다. 이 블랙박스를 쥔 소수는 무엇이 정답처럼 보이게 할지를 결정할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흐름을 끝까지 방치하면 사회는 세 층으로 갈라질 가능성이 큽니다.

AI를 소유하고 통제하며 룰을 설계하는 극소수, 최고급 AI를 비용으로 구매해 활용하는 상위 집단, 그리고 저품질 정보에 갇히거나 알고리즘에 의해 분류·관리되는 다수입니다.

여기서 다수는 더 이상 주체적 ‘사용자’가 아닙니다. 통제의 ‘대상’이 됩니다. 정보의 질이 시민의 등급을 매기고, 등급이 다시 기회를 제한하는 순간, AI는 편의의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신분제의 엔진이 됩니다. 우리는 지금 ‘편리한 사회’로 가는 것이 아니라 ‘등급이 매겨지는 사회’로 가는 길목에 서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불의한 계급화와 차별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이며, 성경은 부와 권력에 따른 차별을 악한 것으로 경계합니다.

지식과 기술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 맡겨진 청지기적 선물입니다. 이를 독점해 타인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삼는 것은, 기술을 우상으로 만들고 정보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불평등의 영구 고착을 막으셨던 ‘희년’의 정신은, 오늘 우리의 기술 현실에도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곧 요구가 됩니다. 불평등이 계급으로 굳기 전에 멈추라는 요구입니다.

약한 자들과 함께하시며 장벽을 허무신 예수님의 질서에 따라, 기술은 소외된 이들을 배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포용하고 살리는 도구로 방향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첫째, ‘혁신’이라는 말 뒤에 숨은 블랙박스형 정보 독점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복지·고용 등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서 AI가 사용된다면, 그 의사결정 과정은 ‘빛 아래 드러나듯’ 투명해야 합니다. 설명 가능성이 담보되지 않는 자동화는 효율이 아니라 권력의 은폐가 되기 쉽습니다.

둘째, 데이터는 사용자들이 함께 일궈낸 자산이기에, 기업이 무기한 독점해 계급의 성벽을 쌓지 못하도록 데이터 이동권과 소멸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어야 합니다. 나아가 사용자의 데이터가 AI 학습에 기여한 만큼 공정하게 평가·보상받는 체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술 영역에서 ‘희년’의 원리를 회복하는 길입니다.

셋째,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누구나 정제된 고품질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공공 AI 인프라라는 ‘디지털 광장’을 세워야 합니다. 공공 도서관이 지식 접근의 최소 선을 지켜왔듯, 공공 AI는 정보의 질이 시민의 등급을 가르는 시대에 최소한의 인간 존엄을 지키는 안전지대가 되어야 합니다.

AI는 바벨탑이 될 수도 있고, 공의와 존엄을 세우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자동으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소수가 AI를 움켜쥐고 다수가 알고리즘에 의해 ‘분류되고 관리되는’ 방향으로 세상이 흘러가도록 방치한다면, 우리는 머지않아 새로운 계급사회-겉은 편리하지만 실상은 등급과 통제의 사회-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 사회에서는 공정한 경쟁이 무너지고, 기회의 문이 점점 닫히며, 자유는 서서히 숨이 막히듯 줄어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기술의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우리가 묵인하고 동조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AI가 인간을 섬기는 도구가 될지, 사람을 점수와 등급으로 나누어 지배하는 우상이 될지는 주권자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어떤 청지기로 서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선택하지 않으면, 선택당하게 됩니다.

▲박순형 목사.

▲박순형 목사.

 

 

박순형 목사

웨이크신학원 교수
‘AI 시대 과학과 성경’ 강의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서기
극동방송 칼럼. 국민일보 오늘의 QT 연재
(주)아시아경제산업연구소 대표이사
이학박사(Ph.D.)
아세아연합신학대학원(M.Div)
필리아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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