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활한 발람은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는 실제적인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죄는 전략을 짜서 치밀하게 움직입니다. 먼저 마음을 속입니다. 마음을 속이는 방법은 감정을 터치하면서 마음을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모압의 싯딤에 머물러 있는데 모압 여자들이 와서 친절하게 대합니다.

‘홍해를 가르고 나왔다는 소문을 들었다, 너희는 정말 대단하다, 광야에서 오느라 고생 했을 텐데 필요한 게 있으면 도와주겠다’ 등등의 말이었겠지요.

이스라엘 남자들은 자기를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거짓 친절과 사랑에 속아 넘어갑니다. 오랜 광야에서 지친 몸과 마음이 위로를 받게 됩니다. 그때 모압 여자들이 이스라엘 남자들을 자기들의 축제에 초대합니다. 이미 마음은 거짓 친절과 사랑에 속아서 미혹되었습니다.

마음이 미혹되면 그 다음은 쉽게 진행됩니다. 착하고 마음 여린 이스라엘 남자들은 친절한 모압 여인들의 축제를 거절할 수 없어 끌려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 축제는 단순히 먹고 마시고 노는 게 아니었습니다. 바알에게 가담하게 하는 바알 숭배의식 이었습니다. 몸만 가고 영혼은 따로가 아닙니다. 일체입니다.

이스라엘 남자들은 급기야 모압 여자들과 실제로 육체적인 음란행위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은 바알에게 묶여 버립니다.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를 경배하면서 동시에 일어난 일입니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참혹한 죄에 대한 심판으로 염병을 일으킵니다. 심판으로 이만사천명이 죽었습니다.

과연 사악한 발람의 교훈대로 이스라엘은 멸망하고 있습니다. 염병으로 계속해서 시체가 실려 나가면서 다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사장 집안의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분노로 일어납니다. 칼을 들고 죄를 지은 동족들을 죽이고 죄를 끊어냈습니다. 죄가 끊어지고 온 이스라엘이 함께 회개하면서 죄에 대한 심판이 끝났습니다.

여호와의 분노가 그치고 이스라엘은 겨우 살았습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죄 에게 공격 당할 수 있습니다. 죄는 달콤하고 친절한 가면을 쓰고 기회만 되면 성도들에게 다가 옵니다. 그 달콤한 거짓으로 마음이 속아 미혹되면 육체는 저절로 따라가서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면 영혼은 마귀에게 묶여 버립니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계 2: 15)

예수님은 발람의 교훈이 니골라당의 교훈이라고 하십니다. 니골라당은 영혼은 거룩하지만 육체는 죄를 짓는 게 심각하지 않습니다. 성도가 죄를 짓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연약하니까...

오히려 사람이 어떻게 죄를 안 짓고 살 수 있냐고 합니다. 복음은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용서하시니 날마다 반복적인 죄를 회개합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죄에 스며들며 무감각해 집니다. 니골라당은 사람이 죄를 안 짓는 것이 불가능 이라고 속입니다. 무능력한 복음으로 속여서 성도들을 죽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열매가 있습니다. 그 열매는 죄를 용서 받았으니 완전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열매 없는 나무를 불에 던져 버리십니다. 복음은 죄인이 의인이 된 것입니다. 구원의 능력은 죄를 끊고 진짜 의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것이 가능한 능력입니다. 사람이 완전한 의인이 되는 것은 추상적인 종교적 개념이 아닙니다. 성도가 교회 안에서는 예배도 드리고 헌신도 하면서 술도 마시고 돈에 욕심을 내고

성적으로 타락해서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은 그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절대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웨이크 신학원 겸임교수/ 압구정큐티선교회 대표/ 국제독립교회연합회 마라나타 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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