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문혁 목사(마천세계로교회 창립목사, 영평교회 원로목사)
㊀ 유대인의 역사적 배경은 큰 핍박 속에서 국가를 건설한 민족
1] 유대인이 왜 핍박을 받았는가
[1] 선민사상으로 인해 만 백성은 유대인을 자연적으로 독특한 민족으로 점찍었습니다.
고로 만민이 보이는 중앙에 거처하는 민족으로, 숨어 지낼 수 없는 드러난 사람으로 주목을 받게 되니 핍박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시 허다한 우상 섬김에서 벗어났기에 숨길 수 없는 민족으로 나타났습니다.
*목사라 해도 직업의 독특성으로 주목거리가 되지 않습니까? 선민으로서는 큰 표적이 됩니다.
[2] 유럽에서나 세계에 알려진 바로는, 유대인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 하여 세계 72개 국으로 흩어져 살아도 모두 핍박을 받는 족속이 되었습니다.
[3] 유대인은 돈 장사를 하는 민족으로, 돈을 이용하는 사람들이나 서로 돈 거래 관계에서 미움을 사는 관계가 되면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습성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래도 저래도 조금씩 나쁜 관계가 되니 핍박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전쟁도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에서 유대인이 미움의 대상이 되니 프랑스, 독일 등과 다 연결됩니다.
히틀러는 서로 연락망이 된 민족이 유대인이라고 지목하여 600만 학살을 당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4] 선민의 구실을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묘하게 이용하시는 나라입니다.
A. 선민에게 축복하십니다. (신명기 28장)에서 3대 탁월성으로 축복하십니다. 물질로, 도덕으로, 신앙으로입니다.
B. 선민을 유지·존속하게 하십니다.
C. 독립시켜 강한 민족으로 이스라엘을 이용하십니다. 미국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요긴하게 유대인을 이용하는 일입니다.
D. 유대인이 유지되려면 방편은 신앙적으로 하나님을 바로 섬겨 하나님의 지키심을 받아야 합니다.
# 한국의 정주에서 모범이 된 분이 안 장로님이신데, 그분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굴뚝에 연기가 나지 않으면 몰래 쌀 한 봉지를 가져다 놓아 주셔서 아침을 지어 먹게 하셨다는 소문이 나 있는 분이셨습니다.
또한 황광은 목사님은 고아들을 늘 사랑하셔서 그 집에 고아들이 모여 공부도 하고 도움도 받았다고 합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 교회도 핍박받고 목사님과 장로님도 공산당의 숙청 대상이 되었을 때, 황 목사님은 고아들이 몰려와 공산당을 막아냈습니다.
후에 남한으로 피난하셨는데, 서울에서도 고아의 아버지로 소문난 분으로 오늘날까지도 고아 그룹들이 모여 기념행사를 합니다.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행위를 하지 못하여 오늘과 같이 교회들이 구실을 하지 못하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㊁ 이스라엘의 역사 배경
1] 이스라엘 분쟁의 핵심은 종교가 아니라 땅을 차지하는 문제로 보입니다(창 13:15).
하나님의 카이로스(고대 그리스어: Καιρός, 하나님의 개입)가 성경으로 보여진 면을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유럽에서도 러시아에서도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았습니다(1866~1970).
1894년에 프랑스에서 시온니즘(Zionism)을 일으켜 예루살렘으로 가려 했으나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에 유대인 부자들이 팔레스타인 땅을 사들여 정착촌을 만들었고, 그 중심지가 텔아비브입니다(히브리어로 ‘봄의 언덕’이라는 뜻).
이 도시는 십자군 전쟁기 자파(Jaffa) 인근에 20세기 들어 세워졌으며 1948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2] 제1차 세계대전의 주동 국가는 독일, 영국, 프랑스 등입니다.
[1] 제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4개 제국의 붕괴, 유럽 지도 재편, 국제연맹 창설, 미국의 세계 강국 부상 등 막대한 정치·경제·사회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하고 민주주의가 확산되었으나, 동시에 경제적 혼란과 국가 간 반목으로 제2차 세계대전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2] 이스라엘의 탄생은 세계 역사에서 큰 변수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1917년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벨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을 위한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했습니다.
영국이 아랍 국가를 세우려는 중에 시온주의도 세우려 했고, 그 과정에서 영국이 손을 들어준 것이 시온니즘입니다.
유대 부자들이 돈으로 중동의 땅을 사들여 시온주의자들이 살게 되었습니다.
3] 유대 민족은 독립심이 강하고 단결력이 뛰어나며 재물과 인간성 면에서 세계적으로 우수한 민족입니다.
미국에는 150개 이상의 민족이 있으나 유대인은 약 760만 명으로 인구의 2.4%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강력 범죄는 소수 민족에서 90% 이상 발생하는 반면 유대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미국의 정계에서도 유대인이 주도적인 역할을 할 만큼 이스라엘의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제1차 세계대전 (1914년~1918년)
신제국주의에 따른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경쟁 심화와 민족주의 갈등이 배경이었습니다. 직접적인 발단은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 부부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에게 암살당한 '사라예보 사건'입니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가 주도한다봅니다.
세계2차대전은 1차전쟁 후 21년만에 1939-1945 9월까지 제2차세계대전은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의해 발발하여 독일, 이탈리아, 일본 3국을 중심으로 시발함에 미국, 대영제국인 영국, 소련, 중화민국이 이끄는 연합국[12]이 맞서면서 1945년 9월 2일 일본 제국이 항복할 때까지 총 6년반 동안 이어진 대규모의 전쟁입니다.
㊂ 미국은 점점 세계에서 강해지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1] 이스라엘이 미국의 도움으로 독립 선언을 하는 그날에 이집트가 중동 전쟁을 선언하였고, 이로 인해 중동에서 제1차 전쟁이 일어났습니다(1948~1949).
땅에 대한 욕심이 생기면서 예루살렘에 대한 욕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중동 전쟁은 유대인의 승리가 되었는데, 이는 유대인은 단결하였으나 아랍 국가는 단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요르단과 이집트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기 땅은 확보했다고 여기고 이 정도면 족하다고 판단하여 전쟁이 끝나게 됩니다.
[2] 중동 전쟁은 1956년에도 계속 일어났으며, 총 4차 전쟁으로 1967년까지 이어졌습니다.
아랍 전쟁은 지역적이었고 연합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전쟁을 할 때마다 조금씩 영토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이 점을 측면에서 보면 기자들이 LA 공항에서 본 결과가 있는데,
중동 국가의 청년들은 공항에 많이 나왔지만 전쟁터로 달려가기보다는 피신을 위한 젊은이들로 북적였고,
이스라엘 청년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와 전쟁터로 향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장면만 보아도 전선을 보지 않아도 승패는 이미 미국 공항에서 판단되었다는 것입니다.
[3] 반면 이스라엘로서의 중동 전쟁은 거의 모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제1차 중동 전쟁의 전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텔아비브 미술관 홀에서 건국 선언문을 낭독함과 동시에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초기에는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아랍인 진영의 아랍 민족해방군 사이의 교전이었으나, 팔레스타인 내부의 극심한 파벌 싸움으로 인해 서로 이스라엘에게 경쟁 파벌을 처치해 달라고 로비하다가 각개격파를 당하였습니다.
그 이전까지 팔레스타인의 맹주를 자처하던 아민 알후세이니는 군사적 기반을 상실하며 완전히 몰락하였습니다.
이스라엘군은 점령지에서 아랍인들의 추방을 적극 조장하였는데, 이스라엘의 공식 역사에서는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스스로 혹은 주변 아랍 국가 지도자들의 선동으로 달아났다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정부 차원에서 소개를 도모했다는 문서들이 밝혀지며 단순한 해명이 아니라는 점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역시 이것이 정치적으로 큰 논란이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에 민족 청소 수준으로 가혹하게 진행하지는 않았고, 일선 부대들도 각자 다르게 행동하여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아랍계 기독교인, 드루즈파, 베두인 등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도 의견이 갈려 지역마다 다른 양상이 나타났습니다.
제2차 중동 전쟁
1956년 7월 26일, 1952년 이집트 혁명으로 대통령이 된 나세르 대통령은 양팔 외교 전략을 취하였습니다.
미국과 서유럽의 지원으로 아스완 댐을 건설하려 했고, 동시에 소련과 무기 협정을 맺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무기를 도입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유럽산 무기 도입으로 인해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 국가들은 아스완 댐 건설비 지원을 거부하였고, 이에 나세르는 수에즈 운하 국유화를 선언하였습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강하게 반발하였고, 이스라엘 역시 자국 선박의 통과 금지에 크게 격분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나세르가 지원하는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페다이가 지속적으로 공격을 가하는 점에 주목하였고, 로이 로스버그가 살해되자 모세 다얀은 강경 연설로 투지를 불태웠습니다.
제3차 중동 전쟁 (6일 전쟁)
1967년 제3차 중동 전쟁은 이스라엘이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을 선제 공격하며 발발하였습니다.
이집트는 기습을 당했고, 이스라엘군은 소수의 피해만 입은 채 이집트 공군을 거의 궤멸시켰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은 공중 우위를 확보하였고, 가자 지구와 시나이 반도, 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 지구, 골란 고원을 점령하였습니다.
이 전쟁으로 이스라엘 영토는 3배로 확장되었으나, 그 결과 자만감이 커져 이후 욤 키푸르 전쟁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많은 팔레스타인인과 시리아인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제4차 중동 전쟁 (욤 키푸르 전쟁)
전쟁 초기에는 이스라엘이 불리하였으나, 전쟁 6일 만에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으로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이후 10월 22일 UN에서 미국과 소련의 결의로 휴전이 성립되었습니다.
㈣ 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입니다
1] 하마스는 중동 전쟁에 꾸준히 참여해 왔으나 소수 세력으로 활동하였습니다.
이후 PLO가 이스라엘과 상호 인정하며 1993년 미국 백악관에서 오슬로 협정을 체결하였고, 이에 반발한 하마스는 더욱 결집하여 가자 지구에서 이스라엘과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2] 하마스는 이후 신무기를 도입하며 격렬하게 싸우고 있으며, 가자 지구 인구 약 200만 명은 떠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은 현재도 지속되는 구조입니다.
3] 중동의 또 다른 세력은 헤즈볼라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단체입니다.
이란은 핵무장을 통해 이스라엘과 대등해지려 하고, 이스라엘은 이를 저지하려는 입장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자 지구는 현재 상태로 유지되기를 원하는 완충 지대가 되고 있습니다.
4] 중동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으며,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하는 질서 속에서 겨우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가자 지역이 해결되지 않는 한 세계 정세는 안정되기 어렵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문제에 더해 중동 문제까지 미국이 감당해야 하기에 부담이 크며,
앞으로 러시아·중국·이란이 연합할 경우 제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도 염려되는 상황입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중국을 지속적으로 견제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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