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6:69-75
박준형 목사(드림교회, 국제독립교회연합회)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였고, 그것도 여러 제자들 중에서 수제자였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앞장서서 잘 따랐고 열심으로 자기가 맡은 일을 수행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사람이지만 평소 예수님을 수행하며 동행하다가 지금은 예루살렘 성에 와 있고, 지난밤엔 최후의 만찬에 참석해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방금전에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을 잡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가서 거기 서기관과 장로들이 같이 모여 있을 때, 베드로는 멀찍이 예수님을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들어갔고 그 결말을 보려고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었습니다(57-58절).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 곧바로 따랐던 자였고, 갈릴리 바다에서 주의 말씀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던 자였습니다. 또 제자들 가운데 가장 먼저 대표로 신앙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는 고백은 예수님으로부터 그의 신앙적 탁월함마저 입증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자신이 곧 겪으실 십자가의 길에 대해 말씀하시자 즉시 예수님을 붙들고 만류했으며, 그 일로 인해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점들로 볼 때 베드로는 뜨거운 열정과 진심어린 마음은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생각과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강성이 있었다고 여겨집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신 뒤 다른 제자들이 흩어질 때에도 그는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까지 들어갔던 이 장면은 그의 특별한 추종과 함께 자기 내면의 모순성을 잘 보여 줍니다. 그는 다른 제자들과는 다른 열정과 담대함이 있었지만, 그 안에는 연약함과 불완전함이 함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베드로의 “세 번 부인”을 예고하셨을까요?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의 사건은 처음엔 “왜”보다는 “어떻게”에 더 큰 관심이 가기 마련입니다. 부인할 것을 예언하기도 쉽지 않은데 정확히 세 번 부인할 것을 어떻게 예언할 수 있는가 하는 인간적인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을 보면 볼수록 베드로를 향한 예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공회의 뜰 안에 들어올 것도, 연거푸 두 명의 여종들과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세 번이나 질문을 받을 것도 다 아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자신의 잘못과 죄악의 근원과 그동안 놓쳤던 것에 대해 흐느끼며 슬피 울게 될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이 사건은 아직 불완전하고 주님의 품성에 이르지 못한 미성숙하고 원초적인 불신과 함께 베드로 자신의 영적 원시성을 드러냈지만, 동시에 그러한 것들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이 확실한 죄인이었음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회개하기까지 그 상황 가운데 역사하시고 주관하셨던 분이 계셨던 것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본인은 지금 거짓과 악이 가득한 자들에게 조롱당하고 계시지만, 베드로가 겪게 될 장면들을 미리 아시고 그 상황들을 파노라마처럼 통과하게 하심으로써 죽어도 고치지 못할 베드로의 인성과 영성을 고치도록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예수님을 부인하던 그 장면이 생생합니다. 그것은 죽어도 변화되지 않는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자기에게서 떠나시고 나서야 자기의 진실을 발견했습니다.

 

고난주일을 맞이하고 부활절을 향해 가면서, 베드로가 그동안 꺽지 못했고,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아집과 빗나간 열심과 참되지 못했던 믿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이 가진 누추하고 사악한 숨은 심령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며 온전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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